젠틀레인 5집 "HOME" 라이너 노트 최고관리자 2015-09-07 641
편안한 일상의 이미지를 그리는 음악
Gentle Rain - "HOME"


2005년 젠틀레인의 데뷔 앨범을 발표할 때의 감회가 아직 생생한데 시간은 10년이 지났다. 먼저 젠틀레인을 여기까지 함께 이끌고 온 피아니스트 송지훈과 베이시스트 김호철, 그리고 우리의 음악을 아껴주신 팬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젠틀레인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청자(聽者)들이 ‘편안하되 가볍지 않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 젠틀레인을 결성할 당시, 나는 많은 부분을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재즈 스타일만으로는 우리가 구상하는 음악을 구현하기 부족하다는 의견을 멤버들과 나누었고, 우리는 일반적인 재즈 밴드들이 시도하지 않을법한 형태의 곡 구성과 연주에 많은 고민의 시간과 노력들을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는 현재 젠틀레인만의 팀 컬러와 사운드를 소유하게 되었다.

나는 젠틀레인의 연주에서 난해한 화성과 화려한 기교의 나열에 의한 설득의 강요보다는 생활의 기쁨과 삶의 낭만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를 바랐다. 젠틀레인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즈의 틀에 다른 장르의 이디엄들을 추가하는 방식을 선택하였고, 이를 결과물로 도출하는 데에는 작, 편곡과 연주에 앞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제시, 다양한 장르의 모니터링이 필요하였으며, 그 과정에서는 정통적인 재즈의 표현기법을 수정하거나 드물게는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곡을 편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그 곡을 쓰고 편집하여 실연해내는 과정도 쉬울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젠틀레인의 음악은 듣기에 쉬우나 만들고 다듬어 연주하기에는 쉽지 않다. 핵심은 테마를 전달하는 과정을 복잡하게 가져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작, 편곡의 단계에서 명확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선점해야 했으며, 연주에서는 현란한 기법이나 복잡한 수식을 동원하기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또렷하고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과 인터액션(Interaction)을 가장 염두에 두었다. 또한 이 기준은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곡 양쪽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했다.

이제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5집의 표제 "HOME"은 편안한 일상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단어이며, 수록곡들은 이전 앨범들과 같은 정서의 연장선상에 있다.

첫 번째 곡인 "Circus"는 송지훈의 곡으로, 재즈 초창기 뉴올리안즈 스타일의 복고적인 리듬과 테마에 이어 펼쳐지는 또 다른 스윙 테마, 모던한 솔로 기법들이 하나로 어울린 곡이다. 송지훈은 멜로디의 구성과 임프로바이제이션(Improvisation)의 전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에 관해 자신만의 유려한 감성과 뚜렷한 주관을 지니고 있는데, 이 곡에서도 그런 자신의 장점들을 차분하게 선보이고 있다.
두 번째 곡 "Airport"는 김호철의 곡이다. 테마 초반부의 서정적인 일렉트릭 베이스 멜로디가 인상적이며, 후반부에는 한 프레이즈를 박자 내에서 배치를 달리해가며 연주하는(전문용어로 ‘리듬의 위치이동-Rhythmic Displacement’이라 한다) 기법이 사용되어 있는데, 이것을 테마, 솔로, 엔딩 섹션 전체에 적용하다보니 메모리가 쉽지 않아서 합주시 서로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젓가락 행진곡"은 리메이크가 많이 이루어진 작품이라 앨범에 수록을 할 것인지 다소 망설였었는데, 올해 ‘봄에 내리는 젠틀레인’ 콘서트에서 초연 후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나름의 자신감을 얻어 수록하게 되었다.
"Night Air"는 나의 곡으로, 몇 년 전에 써두었던 곡을 다시 다듬어 본 발라드이다.
김호철의 곡 "G.R. Funk"(G.R.은 Gentle Rain의 약자)는 젠틀레인 스타일의 펑크를 해보자는 의도로 쓴 곡인데, 젠틀레인의 분위기에 익숙한 분들께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선율을 지니고 있다.
"Way To Home"은 경쾌한 라틴 곡으로, 나는 이 곡의 첫 멜로디 8마디를 만드는데 반년의 시간을 소진했다. 반년 내내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기간 동안 이 8마디의 멜로디를 계속 수정을 거듭했는데, 대략 50번 이상 수정했던 걸로 기억한다.
송지훈이 미드 "Resurrection"을 보고 만들었다는 동명의 곡은 클래시컬하면서도 진지한 테마 뒤에 이어지는 피아노의 속주, 리듬섹션의 다이나믹이 돋보이는 넘버로, 테마의 변화에 따르는 사운드의 굴곡이 커서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Some"은 앞서 언급한 ‘듣기에 편하나 연주하기에는 쉽지 않은 곡’의 전형이다. 김호철은 곡의 멜로디를 만들 때 일반적인 느낌을 벗어나는 도약을 예상하기 어려운 위치에 툭 던지는 듯이 편안하게 쓰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그 특징이 드러난다. 송지훈은 멜로디 부분 피아노 왼손의 리듬 컴핑(Comping)을 능숙하게 연주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다.
마지막 곡 "Danny Boy" 역시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리메이크된 곡으로, 원곡의 멜로디에 충실하되 화성과 리듬의 배열에 신중을 기했다.

10년전 데뷔 앨범 "Into The Gentle Rain"을 만들 당시의 젠틀레인과 현재의 젠틀레인이 가장 달라진 점은, 이제는 우리 3명의 멤버들이 팀을 위한 곡을 만들고 연주할 때 무형의 커다란 공통분모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음악에 관한 견해를 적절히 소통하며 만든 작품들이 스테이지에서 실연될 때의 유쾌함은 앞으로 젠틀레인의 행보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의 유발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서덕원 / 젠틀레인 드러머, 리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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