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프로젝트의 <Cinema In Jazz> - 라이너 노트 by 하종욱 젠틀레인 2008-05-05 1,285
영화가 흐르는 재즈, 재즈가 흐르는 영화
소나기 프로젝트의 <Cinema In Jazz>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다. 도무지 어려운 음악이다. 재즈를 대중들로부터 소외시켰던 원죄를 지니고있는 비밥은 차라리 읽기쉬운 문법이다. 근래에 태어난 포스트밥이니 컨템포러리니 네오밥이니 하는 용어들은 도통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도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마치 암호문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인 재즈. 그러나 이 난해한 음악은 때로 광고음악으로, 또는 영화음악으로 영상화되면서 폭넓은 대중들의 귀와 가슴을 앗아가곤 한다.

음악듣기에 정도(正道)가 있을까마는 필자 역시 처음 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될 당시 영화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때'에 흘렀던 'It Had To Be You', '사랑의 행로'에서 미쉘 파이퍼가 직접 불렀던 'My Funny Valentine' 과 같은 상냥한 손짓을 쫓아 재즈 듣기에 발을 들였음을 상기해 볼때,영화 속에 삽입되었던 친숙한 테마를 재즈로 감상하는 것은 거부감없이 재즈와 친해질수 있는 유용한 접근이 될 것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지난 10여년동안 국내외의 음반사에서는 'Jazz On Cinema', 'Jazz At The Movies'와 같은 타이틀을 빌려 영화속에 흘렀던 주옥같은 재즈 곡들을 선곡, 발췌한 편집앨범들을 발매하였고, '영화 속 재즈' 라는 주제하의 편집앨범은 한결같이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연작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사람들이 영화와 재즈의 연관에 기대어 재즈감상을 선택했으며, 이와같은 재즈에의 접근이 유효적절함을 설명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때문에 'Cinema In Jazz'라고 이름붙여진 앨범을 전해받았을때의 첫번째 물음은 혹시 편집앨범이 아닌가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앨범은 때와 장소를 달리해서 이곳 저곳 흩어져 있던 음원들을 하나로 묶은 편집앨범이 아니다. 일정한 주제에 하나의 뜻으로 규합된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풀어낸 정규레코딩이다.
 
앨범의 주체는"소나기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프로젝트 그룹.
여기에는 2006년 한국 재즈계에 신선한 바람을 안겨주었던 재즈 트리오 '젠틀레인' 의 멤버 서덕원(드럼), 오정택(베이스), 송지훈(피아노)이 주축이 되었고, 앨범의 중심과 흐름을 가늠하는  프로듀서 역시 서덕원이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박지혁(기타), 임달균(색소폰), 장재효(타악기), 안우성(트럼펫), 문혜원(보컬) 같은 솔리스트, 보컬리스트가 참여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앨범을 읽으며 가장 관심 깊게 들여다본 부분은 앨범의 주제, 즉 프로듀싱의 방향이었다. 어찌보면 '영화 속 재즈' 라는 주제는 다분히 식상한 컨셉일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편집앨범 같다’혹은 '상업적인 주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딱 좋은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이 음악을 생산하는 주체인 아티스트와 음악을 소비하는 주체인 대중들과의 교감, 공감, 즉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하는 이상 이들이 선택한 대중적 접근은 공연한 돌팔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치열한 창작의식과 신선한 음악적 도전이 새겨진 창작곡만이 절대 선(善)이라고 한다면, 이또한 위험한 편견이다. 그렇다면, 지난세월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 쳇 베이커, 빌 에반스, 키스 자렛이 우려 먹었던 재즈 스탠더드도 그러한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소나기 프로젝트의 의도는 대중들에게는 친숙한 소재인 영화 속에 흘렀던 영화 음악의  친근한 미덕을 빌려, 자신들의 음악인 재즈의 숨은 매력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즉 '영화 속 재즈', '재즈가 있는 영화' 라는 주제는 대중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재즈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더불어 위의 주제하에 제작되어진 앨범들이 편집앨범으로만, 혹은 우리의 정서와 기호와는 멀리있는 외국 아티스트의 레코딩으로만 존재했음을 떠올려보면, 이 앨범은 영화와 재즈의 연상을 인용한 국내 재즈 아티스트의 첫 번째 시도라는 가치에도 의미를 둘 만하다. 이는 그동안 간간이 시도되었던 '대중 가요의 재즈적 접근', '국악의 재즈적 접근', '클래식의 재즈적 접근' 처럼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음악인 재즈를 보다 친근하게,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재즈의 대중화'의 한 방편으로 모색된 작업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영화‘접속(A Lover's Concerto)', '살인의 추억(우울한 편지)’을 비롯하여, 우리네 영화팬, 음악팬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었던,‘티파니에서 아침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대부', '졸업', '굿모닝 베트남' 등이 고루 진열되어 우리네 정서와 입장이 반영되고 있어 반가움은 가중된다.

영화와 재즈의 조우를 빌린 타이틀이 더이상 신선한 음악적 발상이 아닐지라고 할지라도, 이앨범을 향한 평가는‘식상한 소재의 신선한 해석' 으로 판단되어져야 한다. 피아노 트리오에 근간을 두고, 곡의 분위기와 편곡의 방향에 맞춰 각 악기를 두루 배치, 다양한 들을꺼리를 제공하고 있음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특히 재즈 드러머 서덕원의 정통적인 재즈 드럼 세팅과 대각을 이룬 월드뮤직 밴드‘바이날로그'의 리더 장재효의 타악기 세팅은 재즈와 국악, 또는 재즈와 월드 뮤직의 입장에서 상이한 두 음악 스타일의 대비와 조화를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는, 신선한 접근이다.
 
또한 한국 재즈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이름을 접해봤을 기타리스트 박지혁의 참가도 신선함과 반가움이다. 워낙에 은둔형의 아티스트라 그가 보유하고 있는 음악적 역량을 여느 앨범과 무대에서 접할 수 없어 아쉬웠던 차에, 그가 펼쳐 놓은 특유의 명징하고 싱그러운 톤의 여운, 논리적인 멜로디 즉흥 연주는 오랫동안 귓전에서 맴돌게끔, 입에서 흥얼거리게끔 한다. 2005년 리더 앨범 <Alone Again>을 통해 하드 밥-포스트 밥의 진면목을 예찬했던 임달균의 호방하고 시원스러운 블로윙과 감각적인 프레이즈, 안우성의 정갈한 트럼펫 사운드도 앨범의 중량감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신인이지만, 최근 가장 바쁜 재즈 보컬리스트의 반열에 올라 있는 재즈 보컬리스트 문혜원의 감성적인 보컬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앨범의 취지가 대중적 접근, 친숙한 재즈로의 안내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앨범에 담겨 있는 음악의 어투 역시 나긋하고 상냥하다는 점이다. 굳이 원곡의 멜로디와 이미지를 복잡하게 해체하지 않은 채, 원곡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품은 채, 은밀한 편곡과 변주를 모색하고 있음이다. 그래서 앨범 전체를 들으면서 이 곡이 무엇이지? 라는 의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앨범 전체를 곧은 방향, 일관성을 끌어낸 프로듀서 서덕원의 선명한 의도와 의지가 돋보이는 부문이다. 또한‘젠틀레인’이라는 한 팀에서 자연스러운 교감을 쌓아왔던 서덕원-오정택-송지훈, 세사람의 따스한 하모니와 정감어린 인터플레이가 앨범 전체를 가로지르는 음악적 핵심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젠틀레인의 데뷔 앨범을 들었을때, 필자는 ‘현란한 수사와 비유를 동원하지 않은 채 선명하게 이야기의 의도와 목적을 드러내고 있다’라는 감상을 표한 적 있다. 이 세 사람의 단정한 조화는 소나기 프로젝트에서도 마치 블록을 하나 둘 쌓아가듯 명확한 기승전결의 구조성을 확보해 주고 있기에, 원래 아름다웠던 원곡의 기품은 일체의 훼손 없이 고스란히 보존된 채, 새롭게 구조될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음악 듣기란 편식 없이 이것 저것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 편견 없는 음악 듣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중이다. 때로 커트 로젠윙클과 브래드 멜다우의 맹렬한 도전 의식과 쉼없는 변화에 넋을 잃기도 하지만, 냇 킹 콜과 쳇 베이커만이 할 수 있는 피아노, 또는 트럼펫을 연주하듯 노래하는, 혹은 노래하듯 연주를 하는 자연스러운 미덕은 언제나 동경하는 최고의 예술이기도 하다.
여기 소나기 프로젝트가 들려주는 상냥하고 조근조근한 말투와 다정한 화법도 마찬가지이다. 온 인상을 찡그린 채 분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차분히 음악이 끌어가는 방향대로 실려가며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 차분하고 감성적인 멜로디를 들으며 그 음악이 흘렀던 영화의 추억과 영상을 떠 올릴 수 있다면...
이렇게 단 한 명이라도 그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재즈라는 미로 속으로 빠져 든다면, 이 소나기 프로젝트가 선택한 친절한 재즈 산책의 의도는 성공의 빛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 / 하종욱 / 재즈 칼럼니스트, EBS 공감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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