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레인 3집 " Dreams" 라이너 노트 최고관리자 2010-08-30 1,368
수채화 같이 맑고 투명한 하모니를 선사하는 젠틀레인의 3집 <Dreams>

2010년 여름은 참 더웠다. 비는 동남아 날씨처럼 시도 때도 없이 쏟아졌고 고온다습이 일상용어가 될 정도로 숨막히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세월은 흘러 가을이 오기 마련이고 힘들었던 여름을 추억케 하는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그때그때 적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데 그런 원동력은 예나 지금이나 계절의 흐름과 같은 일상생활의 소소함에서 출발한다.
비가 많이 온 2010년 여름 유독 추억에 맴도는 앨범 재킷이 하나 있었는데 저녁내 내린 비가 고여 있는 쓸쓸한 새벽녘의 아스팔트 사진이 인상적인 젠틀레인의 1집 <Into The Gentle Rain>이다. 올여름처럼 무더운 여름날의 사진이라 생각되는데, 재킷 커버 사진과 함께 젠틀레인의 음악은 매년 여름 다시 꺼내 듣게 되고 나에게는 가을과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고 있다. 

2005년 1집에서 피아노 트리오 편성을 축으로 다양한 게스트와 함께 감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준 젠틀레인이 벌써 데뷔 6년이 되었다. 리더인 드럼에 서덕원, 피아노에 송지훈, 베이스에 이원술로 구성된 피아노 트리오로, 1집 발매 당시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든 창작곡과 연주로 그동안 에디 히긴스, 듀크 조단, 케니 드류 같은 스탠더드 중심으로 서정적인 연주를 주로 들려주던 피아노 트리오의 강자(强者)자리를 단번에 넘보게 되었고, 그해 국내 재즈 앨범 판매 수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마 그동안 국내 피아노 트리오가 음악적 성취와 완성도만을 목표로 힘차게 달려왔기 때문에 여름에 가을과 겨울을 떠올리게 하고 겨울에 여름을 추억하게 젠틀레인만의 고즈넉하고 포근한 연주가 사랑받지 않았나 본다.
그리고 젠틀레인이 사랑받는 이유를 두가지 더 꼽는다면 유명 스탠더드보다 멤버들의 정서가 녹아든 '오리지널'이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고, 최소한의 음악적 언어로 섬세하게 편곡한 멤버들의 '음악적 센스'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라 본다. 이런 흐름은 3년 후 발표한 2집 <Second Rain>(2008)으로 이어졌으며, 신작인 3집 <Dreams>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글을 쓰기 위해 젠틀레인의 <Dreams>을 들을 때 마침 빌 에반스 트리오의 명반 <Portrait In Jazz>(1959)를 함께 듣게 되었다. 피아노 트리오의 걸작 중 하나로 50년 전 빌 에반스-스캇 라파로-폴 모션 3명이 펼친 연주는 재즈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고, 지금 그 누구도 그들이 이루어 놓은 트리오 사운드를 똑같이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두 음반을 자세히 보니 수록된 모든 곡의 연주 시간이 4~5분대로 비교적 짧다. 재즈는 솔로 시간이 많기에 5분이 넘어가는 것은 예사로 보통 7분 내외가 많은 편인데 오랜 세월 많이 들어왔지만 빌 에반스의 'When I Fall in Love', 'Someday My Prince Will Come' 등이 5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젠틀레인도 1집부터 거의가 4분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3집 <Dreams>에 수록된 10곡 모두 4~5분대로 연주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은 21세기식 음악 듣기에 매우 적절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음반이 사라지고 음원으로 유통되는 새로운 시장에서 젠틀레인의 트리오 음악은 힘겨운 승부를 벌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높은 타율을 거두리라 확신한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악기(트럼펫)처럼 노래한다면 트리오 젠틀레인의 곡들은 선율이 보컬곡처럼 들리는 듯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피아노 선율에 노랫말만 붙이면 세련된 대중가요가 되어 더 많은 분들이 사랑하지 않을까 한다.
앨범을 시작하는 송지훈의 'Dream Maker'와 서덕원의 'Fresh Morning'이 그런 곡의 대표로 젠틀레인만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 놓는다. 갑작스런 소나기가 많았던 올 여름에 무지개를 2번이나 보았는데 'Rainbow Street'는 딱 그때의 느낌을 전해주고 있으며, 'Train Travel'은 팻 메시니 그룹이 연상되는 타이틀과 16비트 드럼 연주로 기차여행의 설레임이 느껴진다. '샴푸의 요정'은 빛과 소금의 대표곡으로, 원곡의 작사, 작곡에 노래까지 맡았던 장기호가 직접 부르고 있다. 앨범의 유일한 보컬 곡으로 원곡의 멜로디를 그대로 살리지만 편곡의 묘미를 더해 재즈 요정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Gratitude (Song For J.H.)'는 한국재즈의 거장들과 연주해온 피아니스트 최장현을 추모하는 곡으로, 투병 중에도 피아노에 앉아 병마와 싸웠는데 2010년 6월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너무나 이른 죽음은 재즈인들 마음에 그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처럼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Rain Dreams'와 'Smiling Gently'는 브라질의 삼바와 보사노바 리듬을 적용한 연주로 리드미컬하며 아기자기하고, 'Gentle Snow'는 서덕원의 팝 감각이 잘 살아나는 곡이다. 마지막 곡은 2집(Cavatana - 디어 헌터)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 음악이 흐르는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가 만든 <시네마 천국>의 러브 테마 'Cinema Paradiso'이다. 주선율이 흐른 후 비장미가 느껴지게 휘몰아치는 송지훈의 피아노 즉흥부분이 매우 인상적이고 이원술의 베이스 솔로 또한 호소력 짙다.
 
                                                      김광현 / 월간 재즈피플 편집장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낭만의 꿈

때로는 이 사내들의 '뻔뻔스런' 낭만주의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은 점점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가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나 기쁨이란 표현보다 우울한 어둠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있는데, 아직도 이들은 '꿋꿋하게' 꿈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노래하며 밝은 미래를 그려오지 않았던가. 화사하고 따스한 밴드의 이름만큼이나 이 트리오의 음악은 어딘지 세파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젠틀레인의 시선이 철없는 감상주의에 빠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게 아닐까. 바로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기에 반대로 자신들의 음악은 존재 가치를 지닐 것이라는. 그 또한 밴드의 운명이라는.
어느새 세 번째 앨범이다. 그리고 그 세 작품 중에서 이러한 창작 의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새 앨범인 <Dreams>다. 작품의 대부분이 밴드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가득한 이 앨범은 작곡, 연주, 구성, 심지어 제목까지, 모든 면에서 '꿈'이란 상징적 단어가 지닌 이미지를 풍성하게 선보인다. 그리고 최소한의 문화적 소양을 지닌 이라면 굳이 이론적인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편안히 마주할 수 있다. <Dreams>를 들으며, 나는 아래와 같이 짤막한 이야기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듣는 이에 따라 공감할 수도, 전혀 다른 플롯을 생각할 수도 있다. 젠틀레인이 명명했듯이, 말 그대로 이건 꿈이니까.

*  *  *

G는 또 다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신이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Dream Maker).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했지만 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셈이 됐다. 어쩌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을 떠밀린 건지도 모른다. 한 때 많은 이에게 희망을 안겨준 그였지만 이젠 더 이상 그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가 없다. 섭섭해 할 필요는 없다. 원래 꿈이란 간직하려는 이에게만 자리하는 법이니까.
새벽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 간밤에 소나기가 퍼붓고 지난 뒤라 그런지 싱그러운 기운이 주변을 메우고 있다. 길게 심호흡을 내쉬며 G는 생각했다. 길을 떠나기엔 정말 상쾌한 아침(Fresh Morning)이군. 가벼운 리듬을 더해 내딛는 발길이 도시의 한복판을 지나 또 다른 끝에 다다르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햇살이 비췄다. 그 때 머리 위로 아뜩하게 떠오르는 무지개 하나(Rainbow Street). G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간이역의 광장이다. 그 한 편에 '꿈을 찾아가는 역'이란 푯말이 세워져 있다. 누군가의 노랫소리. 역 구내로 들어서는 계단에 작은 무대가 마련돼 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어딘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환상 속의 연인을 이야기한다(샴푸의 요정).
정말 이대로 떠날 수 있는 걸까. 지우지 못한 미련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막상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런 기분은 말끔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경쾌한 출발소리와 함께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Train Travel).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차창 밖 풍경이 스쳐지나간다. 아침에 만났던 무지개 너머엔 또 다른 먹구름이 드리워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나둘 빗방울이 떨어지며 유리창을 적셔온다. 하지만 그 기운은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꿈결 같은 느낌의 빗소리가 가슴 한 편을 시원하게 씻어 내린다(Rain Dreams). G는 떠나온 도시에서 마주했던 얼굴들을 되짚으며 훈훈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고, 그 자체로 만족했던 나날들이 더 이상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러한 운명이 주어진 것도 감사(Gratitude)할 일이다.
잠시 정차하는가 싶더니 또 다른 승객들이 기차에 올라 자리를 채워나간다. 얼굴엔 하나같이 부드러운 미소(Smiling Gently)를 띠고 있다. 더도 말고 우리네 세상이 바로 저 미소 같기만 하면 얼마라 좋을까. G는 살포시 잠에 빠져들었다. 지난 겨울, 야릇한 기운으로 부드럽게 흩어져 날리던 눈송이(Gentle Snow)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아직도 여름의 열정을 얘기하지만, 머지않아 새로운 바람이 불고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에게 그 계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고스란히 남아 추억을 되살리게 할 낭만의 꿈(Cinema Paradiso)이면 좋으련만.


                                                                      김현준 / 재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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